토정비결과 이지함에 대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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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종,인종,명종,선조 대에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명종 시절인 1547년, 그의 절친한 친구인 안명세가 을사사화(문정왕후, 윤원형이 적대 세력인 윤임 일파를 숙청한 사건)로 죽자, 불의의 권력을 혐오하게 됩니다.
이후 1549년 4월에는 형인 이지번도 화를 당하게 됩니다. 이지함은 이 화를 미리 예언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쭉 전국을 유랑하며 백성들의 참혹한 현장들을 목도하며 유리합니다.
나중에 그의 나이 56세인 선조 시절 1573년에 과거 시험이 아닌, '유일(일종의 특별채용)'로 종6품 포천 현감에 제수되나,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휼하자는 자신의 상소가 무시되자 바로 사직합니다. 1578년에는 아산현감에 제수되어 걸인청을 세우는 등 백성 구휼에 힘쓰다가 사망합니다.
조식, 이이와 친분이 깊었고,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 조카인 이산해(임진왜란 초기 영의정. 동인. 후에 북인)에게 이덕형(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한음)을 사윗감으로 추천했다고 합니다.
그의 호가 토정이라 많은 사람들이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고 있지만, 그가 토정비결의 저자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합니다. 화담 서경덕의 제자로서 잡학에 능했다고는 하나, 그러한 그의 면모가 토정비결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유고집인 토정유고는 그의 사후 100년 후 현손인 이정익이 편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도 토정비결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또한 토정비결이 유행했던 시기는 19세기 인데, 16세기 사람인 이지함의 시기와 너무 차이가 납니다.
연암 박지원의 작품으로 유명한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의 실제 롤모델로 설정했다는 설이 있고요.
정확한 출처를 알기 힘든 이야기로, 소설 열왕대전기를 보면 이지함은 예언에도 능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에 따르면 철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기에 자신이 살던 마을 위로 철길이 생길 것을 정확히 예언했다고 하며, 또 자신의 무덤 위에는 늘 천둥번개가 친다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겼는데 후대에 이르러 그의 무덤 근처에 송전탑이 생겼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걸출한 기인이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토정비결은, 토정 이지함이 일년 신수를 보기 위해 만들어진 비결로 신수 석중결 또는 석중결(石中訣) 이라 고도 불린다.
《토정비결》은 이지함이 의학과 복서1)에 밝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찾아와 1년의 신수를 보아 달라는 요구로 지은 책으로, 조선 후기부터 수백년간 정월2) 초승3)이면 으레 토정비결로 그 해 신수를 알아보는 일은, 조선 민간의 세시 풍경이다.
토정비결이 현재까지 일반 서민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전설이나 야사4)를 통해 토정선생에 대한 여러가지 신비한 예언 일화가 전해져 옴으로써, 우리 역사에서 도선구사나 무학대사와 더불어 널리 알려진 토정이 써 낸 비결이라면 적중률이 높을 것이라는 인식으로 토정비결에 대한 신뢰감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 다른 예언서와 달리 보는 방법이 어렵지 않아서 누구라도 작괘법에 대한 이해와 토정비결 책자만 있으면 일년 신수를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 토정비결의 내용이 비교적 적중률이 좋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